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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고서원 (臨皐書院) 전적

임고서원
  • 지정별 : 보물 제1109호(1991.12.16)
  • 시대 : 조선

임고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전적들은 명종 8년(1553)에서 조선 후기까지 있다. 임고서원은 명종 8년(1553)에 창건되어, 선조 36년(1603)에 중건되었다.
임고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전적은 약 200여 책이 있는데, 이 중에서 지정된 것은 10종 25책이다. 지정된 책을 보면, "신편음점성리군서구해", "논어언해", "심원록", &임고서원고왕록", "임고서원장학계안"등의 책으로 모두가 임고서원에 관련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임고서원이 창건한 명종 8년(1553)에서 조선 후기까지의 사정을 알 수 있는 자료로 서원의 운영과 구성 등 서원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설명자료출처 : 문화재청 www.cha.go.kr]

대책문(對策問)

당시 빈번하게 국경을 넘어오던 홍건적(紅巾賊)에 대처하는 방안을 제시한 포은 선생의 과거시험 답안

제김득배문(祭金得培文)

김득배를 장사지내며 지은 제문(祭文), 포은 선생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한 김득배를 위해 문생(門生)의 예로써 장사지내며 그를 위한 제문을 남겼다.

오죄상소문(五罪上蔬文)

포은 선생이 오죄와 관련되어 유배되었던 사람들의 사면, 복권을 위해 올린 상소문

포은선생문집(圃隱先生文集)

포은 선생의 시를 엮은 책, 포은집은 1439년에 초간본이 간행되었으나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이 포은집은 정사중간본으로서 1667년 영천군수 이만봉(李萬封)이 임지인 영천에서 목판으로 판각하여 간행하고 그 판목은 임고서원에 보관하였다.

선죽판(善竹板)

장충판 중의 하나. 장충판은 조선 성종(成宗)이 1486년에 포은 선생의 충과 효를 널리 장려하기 위해 경상도 관찰사 손순효에게 명하여 내린 문서로 후에 여러 차례 보태어졌다. 총 18장의 장충판 중에 본 선죽판은 탄은(灘隱) 이정(李霆)이 그린 녹죽을 판각한 여덟번째 판이다.

임고서원고왕록(臨皐書院考往錄)

임고서원의 연혁과 당시의 원장 유사 등 서원과 관련된 중요 사실을 기록한 책

회찬송악악무목왕정충록(會纂宋岳鄂武穆王精忠錄)

송나라의 충신인 악비(岳飛)의 정충기사(精忠紀事)와 포전(褒典), 유사(遺事)등을 수록한 것으로 선조 18년(1585)에 국왕이 임고서원에 내린 선사본(宣賜本)

신편음점성리군서구해(新編音點性理群書句解)

주돈이, 정호(程顥), 정이 등 송대(宋代)의 유학자 18인의 시문을 류별(類別)로 분류하여 편찬한 것으로 명종 8년(1553)에 국왕이 이황(李滉)에게 내린 선사본(宣賜本)을 본 서원에 기증

대우수전(大禹手篆)

조선 중기의 유학자 허목(許穆)이 중국에 있는 대우수전(大禹手篆) 77자를 들여와 그 중 48자를 새긴 목판

정몽주 영정

임고서원
  • 지정별 : 보물 제1110호(1991.12.16)
  • 시대 : 조선인조7년(1629)

1991년 보물 제1110호로 지정되었다.
조선후기인 1629년에 고려말의 문신, 학자인 정몽주를 그린 초상화로 비단에 채색되었고 영정의 사이즈는 98 cmx98 cm이다.
좌안팔분면의 안모에 여말선초의 복제인 오사모와 청포단령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좌상이다.

임고서원 (臨皐書院)

임고서원
  • 지정별 : 경상북도 기념물 제62호 (1985.10.15)
  • 시대 : 조선명종8년(1553)

포은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조선 명종 8년(1553)임고면 고천동 부래산에 세워져 1554년 사액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선조 36년 (1603)에 현 위치에 옮겨짓고, 이 때 임금으로부터 다시 임고서원으로 사액되었다.
인조 21년(1643)에는 여헌 장현광을, 정조 11년(1787)에는 지봉 황보인을 추가로 모셨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8년(1871)에 훼철되었으나 1965년에 정몽주의 위패만을 모시고 복원하였으며, 1차 성역화 사업을 마치고 2001년 지봉 황보인을 다시 모셨다.

임고서원 (臨皐書院)의 은행나무

임고서원
  • 지정별 : 경상북도 기념물 제63호 (1985.10.15)
  • 시대 : 조선

이 나무는 높이 약 20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가 5.95m에 이르는 나이가 약 500년의 은행나무로서 생육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노거수이다. 수관 폭은 동서방향으로 약22m, 남북방향으로 약21m에 이르고 있다.
이 나무는 본래 임고서원이 부래산(浮來山)에 있었을 당시 그 곳에 심겨져 있었던 것이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임고서원을 이곳에 다시 지으며 옮겨 심은 것이라고 전해오고 있다.